본 대학 설립자 이병익 장로께서는 참된 신앙인으로, 뜻있는 교육가로, 성실한 기업인으로 한 생애를 살아오시면서 ‘하나님의 은혜와 어머님의 기도’로 오늘의 내가 있음을 늘 말씀해오셨습니다.
“하늘보다 바다보다 더 큰 어머니의 사랑,
이 아들 위해 새벽을 가르며 눈물로 드리던 그 절절한 기도,
물레질 하시며 물렛돌 위에 성경책을 펼치고 한글을 깨우치시던 그 진지한 눈빛을
지금까지 나는 잊을 수가 없습니다.
20세 어린 이 아들 전쟁터에 보내놓고 예배당 찬마루를 눈물로 적셨던 자애로우신 그 어머니, 생사의 간극에서 극적으로 만났건만 사경을 헤매시던 그리도 야위셨던 불쌍한 내 어머니!! 마흔아홉 아까운 나이로 난민촌에서 쓸쓸히 하나님 품으로 훌쩍 떠나신 가엾은 어머니의 모습, 이제는 다시 볼 수 없어 그 깊은 사랑과 아름다운 믿음 마음에 깊이 새기며 그 은덕 영원히 기리고져 이 혜천타워를 건립하여 어머님 영전에 바치려 합니다.
어머니께서 마지막 남겨주신 그 유언과 성구는 내가 힘든 세상 살면서 지치고 넘어질 때마다 긍정의 힘이 되어 용기와 꿈을, 강하고 담대한 믿음을 더해 주었습니다. 그 (겨자씨 믿음)이 오늘 배움에 목말라하며 아들딸 위해 기도하시던, 그 어머니와의 약속의 결실로 산업체 부설학교, 일반계 중ㆍ고등학교, 그리고 1987년 오늘의 대전과학기술대학교를 설립ㆍ운영하는 놀라운 역사를 이룩하게 하였습니다.
고향땅 작은 섬마을 움집처럼 거친 예배당에서 밤새워 기도하시던 어머님의 모습을 기려 새천년 2000년을 열면서 아름답고 안락한 혜천기념교회를 하나님께 봉헌할 수 있었음도 바로 그 (겨자씨 믿음)의 힘이었습니다.
이제 어머님께 드리는 마지막 헌물로 가장 새롭고 훌륭한 타워를 건립하겠다는 소명으로 1998년 10월 당시 혜천대학 학장과 함께 영국,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등을 탐방하여 타워의 건축 양식, 규모 등을 살펴보았으며, 교육계 지도자들과 미국의하버드, 버클리 등 명문대학들의 상징타워들을 섭렵하면서 많은 구상과 준비를 하였습니다. 1999년 5월에는 설계사 실무진을 대동하고 뉴욕과 워싱턴, 샌프란시스코 스탠포드 대학교 등을 탐방하여 설계자료 등을 조사, 수집하기도 했습니다. 최고 기술력을 자랑하는 정림건축의 국내 최초 타워 설계와 국내 굴지의 LG건설(현 GS건설) 의 시공으로 우리나라 초유의 혜천타워와 카리용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10톤의 대종에는 어머니의 초상과 함께 타워와 종을 어머님께 바치는 헌시를 새겨 넣었습니다. 다음으로 큰 종 10개에는 어머님이 평소 좋아하시던 성구를 한글로 부조했으며,그 다음으로 큰 종 10개에는 내게 위로와 용기와 희망을 안겨준 영문 성구들을 부조해 놓았습니다. 나는 혼신을 쏟고 신명을 바쳐 이 타워와 카리용을 건립 제작하였습니다. 78미터 높이의 청동빛 돔과 하늘을 찌르는 웅장한 라임스톤 타워... 78개의 종으로 이뤄진 천상의 화음을 자랑하는 장엄한 카리용...
그렇기에 오늘 우리 대전과학기술대학교의 상징이며 세계 기네스북에 등재된 이 혜천타워와 카리용에는 어머니에 대한 깊은 회한과 함께 나의 눈물과 땀이, 그리고 정성과 피가 서려있습니다. 이 위대한 역사를 이룰 수 있도록 축복해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 (욥 8:7)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지어다. ’ (엡 6:24)
이 두 성구는 기업과 교육경영의 핵심 성구로 내 평생 삶의 좌표이자 족적이며 간증입니다.
이 혜천타워와 카리용을 하나님을 공경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자녀들을 위한 기도와 헌신으로 일생을 사시고 마흔 아홉 나이로 일찍 세상을 떠나신 어머니 양길녀 권사를 추모하며 오늘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축복을 감사하면서 평생 가슴에 담고 살아온 어머니의 사랑과 은혜에 대한 고마움을 담아 주후 2000 년 1월 1일 아들 이병익 장로가 바치다.
끝으로 우리 혜천타워와 카리용이 각박한 이 사회에 영원한 믿음과 사랑과 보은을 일깨우고 심어주는 산 교육의 요람이 되기를 기도하면서 헌시를 올립니다.”